[아이뉴스엠] 이성빈의 데스크 시선 – 이 시대의 슬픈자화상, 무엇을 정의(正義)라고 정의(定義)할수 있는가?
(사진제공= 이성빈, 아이뉴스엠 편집국장겸논설실장)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보고 있자면 숨이 턱턱 막힌다. 도덕 불감증을 넘어 무도덕, 비도덕의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자 한숨과 걱정이 공존한다. 설마 이 정도는 아니겠지, 나의 좁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이겠지, 무슨 사정이 있어 잠시 그러겠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노파심이 아니라 우리들 일상이고 다들 그렇게 산다는 공감대마저 형성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때는 진짜 그렇게 사는 것이다. 갖은 편법과 불법, 탈법과 반칙, 특권이 이 시대를 건너는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지옥같은 현실을 우리는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철학과 소신이 빈곤한 시대, 범죄행위와 거짓말, 위선과 선동에 관대한 시대를 규정짓는 한마디는 ‘상실’의 시대다. 꿈과 희망을 잃고, 사랑과 공존을 잊고, 오직 독존만을 생각하며 공동체의 붕괴나 파괴에 대해선 철저히 무감각한 독하고 뻔뻔한 자들의 전성시대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정치인이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기소되면 대중앞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각종 범죄행위에 관대해서 그런지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당대표가 되어 현실 정치에 훈수를 둔다. 자신의 허물은 뒤로한채 말이다. 이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지 묻고싶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누가 경제 규모에 걸맞는 국민의 의식 수준을 가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사람에 대한 평가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이나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가 아니라 권력이 있거나 돈만 있으면 대단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규정짓는 풍토가 만들어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라는 개념까지 동원하지 않더라도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이 정의의 개념이라면 그 과정의 정의도 결과의 정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인데 대한민국은 그것을 따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정의(正義)라고 정의(定義)할수 있는가?
적어도 선진국은 돈의 크기 옷차람이나 집의 크기 차량종류 나아가 사회적 지위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데 대한민국은 아닌 것 같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져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한국인의 특성이다.
더군다나 내면을 쌓아가는 묵상의 시간은 사라지고 오직 즉흥적이고 가벼운 언행으로 물의를 일이키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생각과 가치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 보다는 다른사람들을 의식해서 사물과 세상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든다.
우리도 이제는 이미와있는 미래세상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질만능 첨단기술 우선의 시대에 우리 자신을 잃지않고 살아내야 하는 현실에서는 슬퍼하는 것조차 사치일 수 있다. 시대가 요청하는 정의란 무엇일까? 오직 나만 생각하는 극단적 이기주의 세상에서 정의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해 보인다. 자칫 거대담론이 될 수 있는 시대의 자화상과 정의라는 개념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상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공동체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규정할 수 있는 상식의 회복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기다. 자고나면 봇물처럼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에서 그것을 가짜와 진짜로 구분해서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세상살이, 있는 그대로 믿고 느끼며 사랑할 수 있는 세상, 언어의 유희보다 진정성이 우선되는 삶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가치관 혼란 시대를 살아내는 해법은 없다. 다만 그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살아가는 삶이 있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자문자답해보자. 대한민국이 아직 희망이 있는지, 정의가 무엇인지를.
아이뉴스엠 편집국장겸 논설실장 이 성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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