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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시인 정호승 "한국서 정치만 낙후…자기들 집단이익만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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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슬만 먹고 살지 않아…자녀 학비 정도는 벌어야"

"중학교 선생님 칭찬에 시 시작…사람들 눈물 씻어주고 싶다"

(기사제공=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 시인 정호승(72)은 솔직하고 맑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는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고통을 가슴에 담아서 그걸 위로하고 덜어주고자 오늘도 시를 쓴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시가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시인으로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가난하게 살았던 그는 시인이 되더라도 다른 생업을 하면서 어느 정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 대해서는 진영논리에 빠져서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인들은 실제로는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국민의 이익을 구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1950년 6·25 전쟁 직전에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그는 대구를 거쳐 서울로 이사했다.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고교 교사, 잡지사 기자로 일했다. 40세 때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됐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비롯해 14권의 시집을 통해 1천100여 편의 시를 발표했다. 초중고 교과서에 시 20편 정도가 실리기도 했다.

뒷줄 왼쪽부터 형, 어머니, 누나, 앞줄 왼쪽부터 정호승, 여동생
뒷줄 왼쪽부터 형, 어머니, 누나, 앞줄 왼쪽부터 정호승, 여동생

[본인 제공]


-- 부모님의 성격은.

▲ 두 분 모두 인자하셨다. 아버지한테는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고, 욕설을 듣지도 않았다. 어머니한테는 한번 맞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마당을 쓸다 몇 시인지 물었다. 안방에 있던 나는 벽시계를 볼 줄 몰랐기에 엉터리로 답변했다. 나는 어머니의 빗자루에 한 대 맞고는 바로 도망을 갔다. 그 일 이후 시계 보는 법을 금방 배웠다.

-- 아버지는 어떤 일을 하셨나.

▲ 아버지는 은행원이었다가 40세에 그만두셨다. 아버지는 원래 사업을 하고 싶어하셨다. 청년 시기에 사진을 좋아해서 사진관 운영을 원했고, 과자 만드는 사업에도 관심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사업을 못 하게 하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 만에 은행을 그만두고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운수업에 뛰어들었다. 아버지 나이 40세 때였는데, 1년 만에 사업이 망했다. 아버지는 그 이후 돈을 벌지 못하셨다. 무슨 협회 같은 곳에서 회계일을 봐주시기도 했는데, 소일거리나 용돈벌이 수준이었다.

-- 아버지가 사업 수완이 없었던 것인가.

▲ 아버지가 70세 정도 돼서 나한테 한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유복하게 자라셨고 20세부터 은행에 다니셨기에 돈은 당연히 항상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경제 관념이 없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정호승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정호승

[촬영 정한솔]

-- 학교 다니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 고등학교 졸업 앨범이 없다.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다. 고교 2학년 때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다. 어머니께 수학여행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아예 알리지도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가 사방으로 다니면서 돈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수학여행에 갔을 때 나는 학교에 나와서 자율학습을 했다. 졸업한 지 25년 뒤에 친구 사무실에서 졸업앨범을 우연히 봤다. 친구들이 부여로 수학여행을 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 기성회비는 제때 냈나.

▲ 반에서 제일 늦게 냈다. 어머니는 생활비가 없어서 허덕이시는데, 기성회비를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교무실에 끌려가 바닥에 꿇어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선생님들이 출석부로 한 번씩 내 머리를 때리고 지나가곤 했다.

-- 대구에서 기와집에 살았다고 하던데.

▲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기와집을 팔았다. 그 옆 마당에 닭장이 있었는데, 이를 허물고 슬레이트 지붕의 간이 집을 만들어 그곳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더는 대구에서 살 수 없었던 부모님은 빚잔치를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어머니는 친척 집에 머물면서 다른 집에 가서 파출부 일을 하기도 했다. 누나는 독일에 간호사로 나가서 돈을 보내왔다. 형은 군의관으로 월남에 파병 가서 전투수당을 송금했다. 우리 집은 힘들게 살았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의 정호승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의 정호승

[본인 제공]

-- 언제부터 시를 썼나.

▲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시간에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라는 시를 배웠다. 그때 선생님이 시를 써오는 숙제를 내줬다. 키가 작아서 앞줄에 앉았던 나에게 선생님이 써온 시를 읽어보라고 했다. 시 제목은 '자갈밭에서'였다. 나는 집 근처 범어천에 물이 마르면 드러나는 자갈 위를 많이 걸어 다녔다. '나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가', '우리 집은 왜 가난해지는가', '나는 왜 공부를 못하나' 이런 문제를 시에 담았다. 선생님은 시 낭독을 마친 나의 까까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호승이 너는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시인이 될 수 있겠다"고 했다.

-- 그 이후 시를 본격적으로 쓰게 됐나.

▲ 얼마 후 교내 백일장이 열렸다. 백일장이라는 말은 그때 처음 들었다. 선생님이 백일장에 가보라고 해서 백일동안 어디에 가는 줄 알았다. "부모님께 어디에 간다고 알리지도 못했는데 큰일이다"라면서 가방을 들고 나가려는데 선생님이 가방은 두고 운동장에 있는 소나무 아래로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백일장에 참가해 '등불'이라는 시로 장원을 했다. 교장 선생님이 상품으로 학교장 직인이 찍혀있는 현금증서 같은 것을 줬는데,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나를 끌고 구내매점에 갔다. 우리는 그 증서를 주고 단팥빵을 무려 30여 개나 살 수 있었다.

경희대 학생 시절의 정호승과 어머니
경희대 학생 시절의 정호승과 어머니

[본인 제공]

-- 대학은 문예 장학생으로 들어갔다고 하던데.

▲ 중고교 시절 나의 학업성적은 중간밖에 안 됐다. 수학을 못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등록금을 낼 형편이 아니었다. 장학생이 돼야 대학에 갈 수 있었는데, 경희대에 문예 장학생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1967년 9월 28일 경희대 주최 백일장 시 부문에서 4등을 했다. 3등까지만 장학생이 될 수 있었기에 아쉽게 탈락했다.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11월에 열린 경희대 주최 전국 고교생 문예 작품 현상 모집에 시 대신에 평론을 제출했다. '고교 문예의 성찰- 고교 시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이었다.

-- 고등학생이 평론도 할 줄 알았나.

▲ 고교 시절에 문예잡지 '현대문학'을 헌책으로 사서 열심히 읽었다. 그 속에 있는 평론도 보면서 그 기본적 개념을 이해했다. 나는 경희대 현상 모집에 당선돼 무시험으로 입학했다.

-- 군 복무를 하면서 신춘문예에 당선됐나.

▲ 대학에 입학한 지 1년 만에 군대에 갔다. 문예 장학생은 1년만 가능했고 신춘문예에 당선돼야 장학생 신분을 지속할 수 있었다. 군대에 가서 열심히 시를 썼다. 무기고 앞에서 보초를 서면서 시를 쓰기도 했다. 1972년 한국일보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에 시가 당선됐다

군복무 시절의 정호승
군복무 시절의 정호승

[본인 제공]

--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고교 교사가 됐는가.

▲ 숭실고 교사 생활을 3년 6개월 정도 하다 그만뒀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교사직에서 대책 없이 물러나 생계가 막막해진 나는 한 달 만에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주부생활'에 이어 '샘터', '여성동아', '가정조선', '월간조선'으로 옮겨가며 일했다.

월간조선에서는 차장대우였는데, 당시 부장은 조갑제였다. 그는 직원들이 퇴근한 후에 뒤늦게 사무실에 들어와 그날 취재한 것을 대학노트에 문장형식으로 정리해 놓곤 했다. 팩트에 대한 정확한 추적과 철저한 확인,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는 균형감각, 부지런함과 성실성을 갖춘 분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분을 존경한다.

-- 월간조선을 그만둔 뒤 전업 작가가 됐다던데, 생계가 유지됐나.

▲ 40세에 전업 작가로 나섰다. 시집의 인세나 원고료로는 생계유지가 안 되니 산문도 쓰고, 사보 글도 썼다. 2000년대 들어서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강연 문화가 형성됐고 나한테도 강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 강연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1주일에 평균 두 번 정도는 강연했다.

-- 강연료는 어느 정도 되나.

▲ 사람들은 다른 분야보다 시인에게는 강연료를 적게 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인은 이슬만 먹고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강연료를 주는 대로 받다가 나중에는 미리 물었다. 시인이 직접적으로 강연료 액수를 질의할 수 없으니 "나에 대한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요"라고 정중하게 묻는다. 그게 그것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예의를 갖춘 것이다.

-- 시인도 돈이 많아야 하나.

▲ 나와 형제들은 생활력이 없었던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 돈은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일 필요는 없지만 가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인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자녀들 학비는 마련해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원고료를 받기 위해 헌정시, 기념시를 써본 적이 있다. 그게 부끄럽지는 않다.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은 시를 써서 생계에 도움을 얻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돈의 문제를 떠나 직장을 그만두고 시에만 매달리는 것은 좋지 않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고 그 직종에서 직업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 시는 생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후 정호승(맨왼쪽), 여동생, 아버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후 정호승(맨왼쪽), 여동생, 아버지

[본인 제공]

-- 본인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 내년 3월 대구 수성구 범어천 근처에 '정호승 문학관'이 세워진다. 내가 초중고 시절에 살았던 기와집 골목 건너편에 범어3동 주민센터가 있는데, 그곳을 리모델링해서 문학관으로 사용한다. 시인으로서는 축복이다.

--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 가장 후회되는 것은 독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중요한 구절과 내 생각을 독서 노트로 정리해 놨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20대로 돌아간다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젊었을 때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도록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을 필요가 있다. 30대 초중반, 40대 초중반에 한동안 시를 쓰지 않은 것도 후회되는 일이다. 문학적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에 허송세월했다.

-- 부모님에 대한 후회는 없나.

▲ 부모님께 시간을 내드리지 못했다. 어느 날 내가 급하게 가방을 들고 집에서 나갈 때 아버지께서 물었다. "호승이, 너 오늘 바쁘나?"라고 했고 나는 "지금 바쁩니다. 지금 나가려고 그러잖아요"라고 답변했다. 아버지는 "내가 너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네가 바빠서…" 이렇게 말끝을 흐리셨고 나는 "나갔다 돌아왔을 때 말씀하세요"라고 답변하고는 그대로 외출했다. 귀가해서는 아버지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 했는지 묻지 않았다. 이제 와서 후회가 된다.

1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와 공중목욕탕에 갔다. 아버지는 탕 속에서 주무시곤 했는데, 그곳에서 잠들면 위험할 수 있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서는 아버지 발에 내 발을 대고 있다가 아버지 눈이 감기면 발로 차서 깨우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큰 불효였다.

-- 부모님 집으로 출근했다고 하던데.

▲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육친처럼 친했던 동화작가 정채봉 씨가 보고 싶었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어서 볼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보고 싶다고 울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실 때 열심히 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작업실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정리하고 부모님 집의 빈방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그곳으로 매일 출퇴근을 했다. 2002년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신 2019년까지 그렇게 했다. 내 집은 도곡동, 부모님 집은 대치동이었으니 멀지는 않았다.

가수 안치환과 정호승
가수 안치환과 정호승

[연합뉴스 자료사진]

-- 시는 단숨에 써 내려가나.

▲ 한 번에 일필휘지로 쓴 시는 1∼2편 정도다. 대체로 평균 30번 정도는 고쳐 쓴다. 평소에 메모해놨던 것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시로 만든다. 완성하는데 4∼6개월 정도 걸린다. 시 한 편을 완료하고 다른 시 작업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여러 편을 조금씩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이다. 시를 쓸 때는 육필보다는 노트북을 이용한다. 나는 활자의 힘을 안다. 활자를 보면 정리 정돈이 잘된다.

-- 지금까지 쓴 시 가운데 문학적 완성도가 가장 높은 시는 무엇인가.

▲ 그걸 내가 평가하기는 어렵다. 시인의 대표작은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의 조건과 독자들의 평가 등 여러 가지가 아우러져서 시인의 대표작이 나온다. 시인이 작품 한 편이라도 시문학사에 남기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 사랑과 죽음, 고통을 시의 소재로 자주 삼는 이유는.

▲ 문학의 비밀이자 영원한 주제는 사랑과 죽음이다. 이것들은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고통에서 시작돼 고통으로 마무리된다. 사랑을 시작하면 고통도 시작된다.

-- 시 '수선화에게'에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구절은 무슨 의미인가.

▲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외롭게 태어나서 죽을 때도 외롭게 죽어가는 존재다. 나는 경험해 봤다. 어머니가 일주일 뒤에, 한 달 뒤에 돌아가시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은 죽을 때쯤이면 그걸 인식하게 된다. 죽음이 찾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누가 위로한다고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감당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참으로 외로운 일이다.

-- 시 '부치지 않은 편지'에 나오는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라는 구절의 의미는.

▲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를 생각하면서 쓴 시다. 가수 김광석 씨가 이 가사로 노래를 녹음하고는 바로 다음 날 숨졌다. 박종철 열사 같은 사람들은 시대의 작은 새인데, 이들이 큰 산을 입에 물고 날아가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본다"는 구절도 민초들이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시인 윤동주
시인 윤동주

[연합뉴스 자료사진]

-- 존경하는 문학인은 누구인가.

▲ 윤동주를 좋아한다. 그는 생전에 한 번도 시집을 내지 못했지만, 시인으로서 영혼이 맑고 순수하다. 비극적이고 역사적인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윤동주의 생애에는 향기가 있다. 문학의 스승은 현실이라고 했던 김수영도 존경한다. 한용운도 좋아하는 분이다.

-- 한글전용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했는데.

▲ '모자의 생각'이라는 시를 썼다. 머리에 쓰는 모자인데, 읽는 사람은 어머니와 아들의 생각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래서 괄호를 해서 모자(帽子)라고 했더니 출판사 편집자가 보기 싫다며 한자를 빼버렸다. 이 밖에도 비슷한 일은 많다. 심심한 마음을 전한다고 했더니 자기는 심심하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입사 면접일로 금일 몇 시라고 했더니 금요일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수준이 올라갔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좋아졌다. 그런데 정치는 낙후됐다. 국민의 이익을 구한다는 핑계로 자기의 집단적 이익만을 추구한다. 신뢰하기 어렵다. 정치가 진영논리에 함몰돼서 진실과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진영을 따지지 말고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사실인지, 그것을 찾아내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진실과 사실과 정의는 하나다.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거짓이고 이기주의다.

강연하는 정호승
강연하는 정호승

[연합뉴스 자료사진]

-- 취미는 무엇인가.

▲ 특별한 게 없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운전도 배우지 못했다. 당구도 칠 줄 모르고 골프도 하지 않는다. 술은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진다. 담배는 40세까지 피우다 끊었다. 1주일에 한 갑 정도 피웠는데, 잡지사 기자 시절 마감 압박 때문이었다.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 별도로 운동시간을 내지는 않고 생활 속에서 많이 걷는다. 계단은 걸어서 올라간다. 집에서 전자레인지를 돌리면서 스쿼트를 하기도 한다. 이전에는 헬스장에도 갔는데, 이제는 나이 들어서 가기가 민망하다. 노인만을 위한 헬스장이 생긴다면 가보고 싶다.

-- 하루 루틴은 어떻게 되나.

▲ 노인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밤 12시 전에 자본 적이 없다.

2020년 11월 신간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간담회에서의 정호승
2020년 11월 신간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간담회에서의 정호승

[연합뉴스 자료사진]

-- 삶의 목적이 있다면 무엇인가.

▲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973년 등단한 이후 1980년대까지는 시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시를 쓴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인간인 나 자신의 눈물을 닦기 위해서 시를 쓴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으로서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 포부나 계획이 있다면.

▲ 내년에 73세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내일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남아 있는 인생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시간을 만들어서 열심히 시를 쓰고 싶다. 내 가슴속에 더는 시가 남아 있지 않아서 이제 죽어도 아쉬운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모든 사람은 시인이다. 사람들이 자기 생업 때문에 시를 쓰지 않아서 시인이 대신 시를 쓴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시를 읽을 때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시인이 무슨 의도로 썼을까를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시를 읽는 나의 마음, 나의 생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취재지원 정한솔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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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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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속에서 꽃을 피워내듯"…'생명화가' 김병종에게 세계인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동양의 정신세계를 ‘문인화’적 전통에 입각시적 감성으로 따스하게 표현백토, 종이죽, 석채 등 닥원료 등 한국적 소재의 다양한 실험 세계적 갤러리 '사치'에서도 큰 호응 5월 20일까지 U.H.M 갤러리에서 초대전 동…

2023.04
08

‘흑인 인어공주’에 이어 ‘흑인 팅커벨’까지...“디즈니 정신 못 차린다”

디즈니의 피터팬 실사화에 등장하는 팅커벨(사진= 디즈니) 디즈니가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 실사화에서 흑인 인어공주 캐스팅을 한 데 이어 피터팬 실사화에서 흑인 팅커벨 캐스팅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오는 28일 방영을 앞두고 ‘…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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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겠습니다"...'스즈메의 문단속' 한국 영화계 접수하며 400만 돌파 목전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포스터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23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한국 영화계를 접수했다. 31일 오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정보에 의하면 '스즈메의 문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