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3년 대관식을 치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진=British Textile Centre]

영국 국왕제 폐지의 효시일까.

영국인 다수는 며칠 뒤에 열릴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가 30일(현지시각) 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여론조사업체 유거브(YouGov)는 최근 영국 거주 성인 3070명을 대상으로 '찰스 3세의 대관식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의 64%는 대관식에 '관심이 거의 없다' 혹은 '전혀 없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8세부터 24세까지의 응답자는 무려 75%가 '전혀 관심이 없다' 혹은 '거의 없다'고 대답한 것으로 드러나 영국 왕실로서는 곤혹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왕실을 우러러보는 것은 이전 세대 분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라며 "부모님은 대관식에 관심이 많으시고 왕실을 사랑하지만 내겐 그저 '마음에 안 들면 안해도 되는 일'일 뿐"이라 대답한 영국의 젊은이 제이슨 압달라 씨의 인터뷰를 전했다.

무려 70여년 만에 열리는 대관식에 영국인 다수가 관심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영국 국민들의 생활이 고물가로 인해 팍팍해졌단 점이다. 이로 인해 실생활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허례허식'이라고도 생각될 수 있는 대관식에 관심을 쏟을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대관식 비용은 선대 왕인 엘리자베스 2세 때보다 약 2배나 되는 1억 파운드 정도로 추산돼 영국인들의 눈살을 더욱 찌푸리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질적 이유 외에 관념적인 이유도 찾아볼 수 있다. 

남성 왕인 찰스 3세는 '여왕이 등극하면 영국이 번영한다'는 영국인들의 전통적인 인식에서도 벗어난다. 이 역시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찰스 3세가 과거 다이애나빈과의 결혼 생활에서 문제를 보인 끝에 이혼했던 점들이 영국인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는 점 또한 생각해볼 법한 이유다.

엘리자베스 2세의 치세가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시작됐던 것과 달리 찰스 2세에게는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다만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가 궁극적으로 영국 왕실의 전면적인 폐지와 그에 따르는 공화국 수립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해야 한단 분석이다.

영국의 경제가 다시 좋아질 경우 왕실에 대한 여론이 좋아질 가능성이 있고, 찰스 3세 또한 왕실의 변화에 열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은 사상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되는 등 영국 왕실은 나름대로 스스로 개혁하고자 노력했단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이번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또 다른 변화를 꾀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이번 대관식에서는 다문화 국가로 변해가고 있는 영국의 현실을 반영해 다양성이 강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왕실의 종교인 성공회(Anglican Church) 뿐만 아니라 영국 국민들이 믿는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 또한 대관식에 초청될 가능성도 높다. 

역사적으로 현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왔던 영국 왕실과 정부가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국민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할 것인지 지켜보는 것 또한 흥미로울 것으로 보인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